Article at a GlanceLG유플러스는 AX(AI Transformation, AI 전환)를 중심으로 전사의 전략을 전환하면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에도 변화를 꾀했다. 잠재력이 큰 초기 AI 스타트업과의 협업 및 투자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딥테크 전문 대표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블루포인트)’와 함께 AI 스타트업 발굴·육성 프로그램 ‘쉬프트(Shift)’를 기획했다. 경량화, 온디맨드, 레드티밍 등 편리하고 안전한 고객 경험을 강화할 수 있는 기술을 지닌 4개 스타트업과 PoC(개념검증)를 진행하며 상용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전용 펀드를 조성해 실제 4개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했다. 협업 과정에서는 “좋은 기술을 사 오거나 빌리자”는 LG유플러스의 전사적 메시지에 따라 기술 및 현업 부서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스타트업의 기술을 검증했다. 블루포인트는 LG유플러스 현업 부서의 피드백을 스타트업에 전달하며 조언을 전하는 등 원활한 PoC 운영을 조율하며 이끌었다.
“스타트업과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회사, 스타트업이 가장 함께 일하고 싶은 회사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 여정의 시발점이 ‘쉬프트(Shift)’이다.”
지난해 11월 LG유플러스 신임 대표로 취임한 홍범식 사장이 첫 공식 행보로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스타트업 발굴·육성 프로그램인 쉬프트의 데모데이였다. 그는 이 데모데이 행사에 참여해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강조했다. 쉬프트는 LG유플러스가 딥테크 전문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이하 블루포인트)’와 함께 인공지능(AI) 기술 고도화를 목표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초기 AI 스타트업을 발굴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OI) 프로그램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선발된 스타트업 중 4개 기업과 5개 PoC(Proof of Concept, 개념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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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진행했다. LG AI연구원과 LG유플러스가 개발한 AI 기술인 ‘익시’의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가 제공됐고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온디바이스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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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앱 ‘익시오’의 고객 경험 개선에 도움이 되는 기술적 가능성을 테스트했다.
6~12주에 걸친 PoC를 진행한 뒤 LG유플러스는 실제 상용화를 위해 스타트업과의 계약 및 추가 PoC를 검토하는 등 참여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더욱 돈독하게 강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용 펀드를 결성해 바로 투자를 집행한 스타트업도 있다. 이처럼 PoC와 투자를 동시에 추진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업계 평가다. LG유플러스는 PoC 성과를 바탕으로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투자를 병행해 스타트업과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초기부터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PoC 기회를 확대하고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할 2기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협업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양쪽 모두가 기회와 리스크를 함께 짊어진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과 손잡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는 건 큰 기회다. 하지만 기술이나 핵심 아이디어가 유출될 수 있다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협업을 직접 담당하는 기업의 실무진도 마냥 호의적일 수가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업무에 협업 과제를 추가로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단 사업을 시작하면 짧은 기간 안에 소기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도 떠안는다. 그래서 업계 일각에선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의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취지는 좋지만 근본적으로 성공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게 그 이유다.
이에 LG유플러스의 쉬프트는 기존의 오픈이노베이션과는 다른, 새로운 구조를 과감하게 도입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핵심은 대기업 특유의 경직성을 내려놓고 스타트업과 파트너사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 부분이다. 먼저 LG유플러스는 자신들에게 필요하면서도 스타트업과 윈윈할 수 있는 AI라는 공통분모를 찾아 오픈이노베이션의 테마로 설정했다. 그리고 PoC와 투자를 동시에 가져가며 참여 스타트업이 사업 기회를 빠르게 도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AI 혁신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초석을 놨다. 스타트업들이 잡념 없이 장기적인 관계 형성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전용 펀드를 만들어 투자도 연계했다.
LG유플러스와 스타트업의 끈끈한 협력은 오픈이노베이션이 허울 좋은 구호가 아니라 기업에 새로운 경쟁력을 더할 유용한 도구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윈윈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이 되려면 어떤 구조와 요소가 갖춰져야 할까. DBR이 LG유플러스가 블루포인트와 함께 추진한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 쉬프트에서 그 해답을 찾아봤다.
AX를 위한 혁신 전략 전환오픈이노베이션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LG유플러스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이 새로운 혁신 전략은 아니었다. 기존에도 스타트업 투자, 육성, 협업 등을 진행한 적이 있다. 보통 어느정도 기업으로서 입지를 구축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할 경우 실제 PoC가 상용화로 이어지거나 큰 투자 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LG 유플러스도 전략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객에게 맞춤형 혜택을 제공하거나 피싱 등 보안 위험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하는 등 통신사에 필요한 AI 솔루션들이 등장하고 AI 역량이 통신사에도 더욱 중요해지며 AX(AI Transformation, AI 전환)이 전사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해 11월 공개한 온디바이스 AI 통화앱 ‘익시오’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앱 사용자들의 고객경험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과 전략을 전면적으로 고안하게 됐다. 이에 경영진은 AI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뿐만 아니라, 외부에 좋은 기술이 있다면 이를 사 오거나 빌리는 방안까지 적극적으로 추진해 AI 기술을 강화하는 데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임직원들에게 전달했다.
이처럼 AI를 중심으로 기업 전략과 제품에 변화가 생기자 오픈이노베이션에도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게 됐다. 새로운 시도를 빠르게 실행하고 다양한 협업을 모색하자는 철학을 장착하자 스타트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더욱 명분을 갖게 됐고, 이에 관련 사업에도 더욱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LG유플러스는 스타트업 발굴 과정부터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했다. AI 기술을 명확한 어젠다로 설정하자 초기 스타트업이 더 적합한 파트너로 판단됐다.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그야말로 신생 기업이었다. 주로 중견 이상의 스타트업과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하던 LG유플러스로선 생소한 상대였다. 그렇다고 기존처럼 성장성이 이미 검증돼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시리즈 B 이상의 스타트업을 찾자니 투자 비용이 컸다. 단순한 계약 이상의 밀접한 관계를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어떻게든 새 판을 짜야 했다.
LG유플러스가 모색한 돌파구는 ‘또 다른 오픈이노베이션’이었다. 블루포인트와 손을 잡은 것이다. 블루포인트는 딥테크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데 있어선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자랑하는 액셀러레이터다. 400여 개의 딥테크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한 경험도 있어 LG유플러스의 구상에 딱 들어맞는 파트너였다.
블루포인트 또한 LG유플러스의 취지에 공감했다. 이미영 블루포인트 벤처스튜디오 그룹장은 “자체적으로도 AI 관련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었지만 대기업과 함께 나서면 ‘숨은 보석’을 찾아내기가 더욱 용이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블루포인트는 대기업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스타트업에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알 만한 대기업과 함께 일했다는 이력은 향후 비즈니스 파트너나 투자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신뢰할 수 있는 레퍼런스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각 스타트업으로서도 자신들이 공들여 개발한 기술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쓰일 수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오픈이노베이션에도 브랜딩 필요AI 패러다임 전환할 ‘쉬프트’ 가동이에 LG유플러스와 블루포인트는 함께 PoC를 진행하고 이와 연계한 전용 투자 펀드를 결성해 실제로 투자까지 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LG유플러스의 기술과 사업의 방향성이 확고하게 잡히자 오픈이노베이션을 함께 수행할 대상과 그 목표 또한 더욱 명료해졌다. 초기 스타트업 중에서도 발굴 비용이 크고 아직 역량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아 PoC를 수행하기 어려운 시드 단계의 스타트업보다는 이미 투자를 받은 경험이 있고 제품과 서비스가 개발된 프리 A와 시리즈 A 스타트업을 주요 타깃으로 삼기로 했다.
프로그램 브랜딩에도 힘을 쏟았다. 스타트업 투자 및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서 브랜딩은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스타트업의 하버드’라 불리는 ‘Y 콤비네이터(Y Combinator, YC)’가 대표적인 예다.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 혁혁한 졸업생들을 배출하며 YC 출신이라는 사실 자체가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에 큰 이점으로 작용하고, YC 또한 이러한 명성을 바탕으로 잠재력이 큰 스타트업을 끌어들이는 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 국내에선 삼성전자의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 기술-예술-사업을 결합한 현대자동차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ZER01NE)’이 해당 기업이 추구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의 방향성을 뾰족하게 나타내는 브랜딩 성공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프로그램의 브랜딩을 고민하던 LG유플러스와 블루포인트는 컴퓨터 키보드의 시프트(Shift) 키에 눈길이 갔다. 컴퓨터에서 시프트는 기능을 전환하는 키다. 이처럼 LG유플러스의 혁신적인 변화와 더불어 스타트업이 LG유플러스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성장하며 기존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의미로 프로그램 이름을 ‘쉬프트’로 정했다.
쉬프트는 지난해 10월부터 본격 가동됐다. 공식 홈페이지 및 블루포인트 SNS, 스타트업 및 창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모집을 위한 홍보를 진행했다. 기존 포트폴리오에 있던 기업들과 협업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AI 스타트업 1150개사에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모집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총 112개 팀이 지원했고 그 가운데 95%가 초기 단계 스타트업이었다. 특히 기술 전공 석박사나 대학 랩 출신 등 기술 인력을 보유한 기업이 90%에 달했다. 윤정민 LG유플러스 벤처투자육성팀 팀장은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오픈이노베이션의 기술과 대상을 명확하게 설정하니 이후 모집, 심사에도 명확한 기준이 잡혔다”며 “프로그램만의 색을 담은 브랜딩을 진행한 덕분에 타깃으로 삼은 스타트업이 대거 지원하는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이후 심사 과정에는 LG유플러스와 블루포인트의 경영진, 투자 파트너들이 함께 참여했다. 1차 서류 평가를 통해 26팀, 2차 PT 평가를 통해 11팀을 선정했고, 3차 대면 평가를 통해 최종적으로 8팀이 선정됐다. (DBR minibox Ⅰ ‘‘쉬프트’ 프로그램에 선정된 최종 8팀’ 참고.)
이후 LG유플러스는 내부에서 이들 스타트업과 PoC를 추진하고자 하는 부서와 사업 등에 대한 사전 수요 조사에 나섰다. 블루포인트 또한 스타트업에 담당 심사역을 배정했다. 담당자는 스타트업들이 각기 가진 AI 기술을 바탕으로 LG유플러스와 함께 도모하고 싶은 사업을 조사하면서 현업 부서와의 매칭 가능성을 검토했다. 올해 1월에는 현업 부서와 스타트업의 사전 미팅을 진행하며 4개 스타트업과 5개의 PoC 과제를 구체화했고 2월에는 PoC 계획을 최종 확정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데이터, API, 예산 등 스타트업에 지원할 항목을 점검했다.
스타트업 선정 과정부터 LG유플러스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그가 이끄는 CTO 부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는 사실도 쉬프트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데 큰 몫을 했다. 대기업이 오픈이노베이션에 어려움을 겪는 대표적인 이유로 ‘현업 부서의 협조 부족’이 꼽힌다. 현업 부서에서는 이미 실무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한데 성공 가능성이 명확하지 않은 스타트업과의 협업에 큰 공을 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느낀다. 특히 기술 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업 부서뿐만 아니라 기술 부서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이들은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외부 기업에 의존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경우가 많다.
전창훈 LG유플러스 벤처투자육성팀 선임은 “쉬프트를 진행하며 오히려 스타트업과 협업을 갈망하는 현업 부서의 목소리를 포착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현업 부서에서도 스타트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이 새로운 혁신을 빠르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데는 공감하고 있었다. 현업 부서에서도 자체적으로 협업할 만한 스타트업을 물색하기도 했지만 실제 협업을 추진하는 과정은 업무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이를 실질적으로 추진할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스타트업과 협업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가 마련되자 그간 관심을 갖던 부서들에서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표했다.
윤정민 팀장은 “좋은 기술이 있으면 사 오거나 빌리자는 데 경영진 차원의 전사적인 합의가 단단하게 형성된 덕분에 기술 부서를 비롯한 현업 부서의 협조가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심사 단계에서부터 스타트업이 보유한 기술을 LG유플러스의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면밀히 점검할 수 있었다.
DBR mini box I
‘쉬프트’ 프로그램에 선정된 최종 8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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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어리테크: 구글에서 AI 제품을 만들던 팀이 모여 온디바이스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사용자 정보를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해 이를 AI 에이전트에 적용하는 서비스를 제공
· 오믈렛: 복잡한 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화된 AI 모델을 개발하고 물류, 로봇, 교통 등 다양한 산업에 AI 에이전트를 공급
· 테크노매트릭스: AI 모델 재학습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해 AI 모델의 성능과 지속가능성을 극대화
· 르몽: 외식업 자영업자를 위해 고객 리뷰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AI 에이전트를 제공
· 에임인텔리전스: 생성형 AI의 보안상 취약점을 진단하고 보안 대책을 제공하는 가드레일을 개발
· 토글캠퍼스: AI 기반 회계 자동화 솔루션을 개발해 공공기업 및 대형 회계법인의 내부회계관리 및 회계 업무를 혁신
· 트릴리온랩스: 한국어 기반 거대 언어모델(LLM)을 개발해 소버린 AI(Sovereign AI)ⅰ
실현
· 스퀴즈비츠: AI 경량화 및 최적화 기술을 바탕으로 AI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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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화음에서 화음으로PoC에서 상용화로PoC가 본격적으로 진행됐지만 PoC의 모든 과정이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현업 부서와 스타트업은 서로 일하는 방식, 사용하는 언어, 눈높이 자체가 많이 달랐다. 현업 부서에서는 스타트업의 기술과 역량이 자신들의 니즈에 부합하는지 확인하고자 했으며 스타트업에서는 현업 부서의 기대치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쉬프트는 이러한 잡음을 조율하기 위해 한 달에 두 차례, 정기 점검 시간을 마련했다. 벤처투자육성팀은 현업 부서의 반응을, 블루포인트는 스타트업의 반응을 듣고 이를 공유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의 기술 부족이 원인이라고 오해했던 부분이 사실은 리소스 문제인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는 등 성과가 나왔다.
DBR mini box II : Interview: 김지훈 LG유플러스 CSO & 이용관 블루포인트 대표
PoC-투자 연계하고 글로벌 파트너십까지… “‘스타트업이 협력하고 싶어 하는 1위 기업’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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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프트는 목표가 뚜렷한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자연스럽게 AX(AI Transformation, AI 전환) 얼라이언스를 확대해 LG유플러스가 AX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현업의 니즈를 반영해 실증사업 과제를 선정하고 전용 펀드를 만들어 투자하는 등 선발된 스타트업과 LG유플러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딥테크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블루포인트와 손을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블루포인트는 기획 단계부터 함께해 프로그램 운영 전반과 펀드 운용을 담당하며 LG유플러스와 스타트업의 가교 역할을 했다. 김지훈 LG유플러스 CSO와 이용관 블루포인트 대표를 통해 두 이해관계자의 역할과 파트너십에 대해 들었다.
쉬프트 프로그램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김지훈 AI 산업은 빠르게 변화하면서 성장하고 있고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매주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전 세계적으로 공개되고 있어 한 기업이 AI 분야에서 신속하게 우위를 갖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LG유플러스가 보유한 가입자, 통신망 및 AI 인프라와 기술, 스타트업이 보유한 다양한 AI 혁신 기술이 만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유효한 AI 전략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우수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국내 대학기술지주 및 투자사, 초기 AI 기술 기업 투자 및 육성 역량이 있는 블루포인트 등의 파트너사와 함께 쉬프트를 추진하게 됐다.
블루포인트는 기존에도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해왔는데 쉬프트는 어떻게 차별화되나?
이용관 대기업과의 협업은 초기 기업에 아이템을 검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들이 쉬프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투자사가 참여하면 해당 기업의 기술뿐 아니라 사업성까지 면밀하게 평가할 수 있다. 쉬프트 역시 이러한 일반적인 오픈이노베이션 프로젝트들과 방향은 같지만 ‘전용 펀드’를 운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 펀드는 대기업과 초기 스타트업 간의 접점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대기업은 통상적으로 투자에 신중한 경향이 있어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는 대기업의 투자 기준이 액셀러레이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쉬프트의 전용 펀드는 대기업이 기술력을 보유한 초기 기업에 유연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돕는다. PoC를 통해 사업성을 확인한 뒤 추가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 준다. 전략적 파트너십과 재무적 성과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셈이다.
PoC 연계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성과 없이 끝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성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
김지훈 LG유플러스와 스타트업 모두에 실질적인 시너지가 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모집 분야부터 심사 단계까지 CTO와 사업조직, CSO의 리더가 직접 참여해 스타트업의 기술을 살펴보며 자사와의 사업 연계성을 초기부터 검토하고 계획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스타트업으로부터 사전에 희망 PoC 과제를 조사해 현업 부서와 조율했다. 현업 부서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과 매칭되도록 하니 양사 간 협력 의지가 높아졌고 자연스레 성과도 좋아졌다.
이용관 현업 부서와 스타트업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일하는 방식과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다. PoC 결과에 대한 기대치 역시 다를 수 있다. 블루포인트는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방식 모두에 익숙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진행 상황을 팔로업하며 중간에서 서로의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집중했다.
쉬프트의 발전 방향은?
김지훈 최근 AI 스타트업 사이에서 글로벌 사업을 지향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지만 다양한 제약 탓에 어려움이 많다. LG유플러스는 스타트업들이 이러한 페인 포인트를 극복하면서 해외 파트너들과 협업해 글로벌 유니콘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작점을 마련하고자 한다. 혁신 AI 스타트업, 글로벌 파트너사, LG유플러스가 공동으로 성장할 수 있는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을 구축해 ‘스타트업이 협력하고 싶어 하는 1위 기업’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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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테크(이하 페어리)가 대표적으로 양사의 협업과 조율을 통해 PoC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사례다. 페어리는 구글 출신의 개발자, 사업 개발자, 광고 영업 매니저가 의기투합해 2021년 창업한 온디바이스 AI 스타트업이다. 장인선 대표는 구글에서 약 8년간 개발자로 일하며 AI 기술을 제품화하고 제품을 총괄한 경험이 있다. 페어리는 사용자의 온라인 활동을 추적해 사용자에게 적합한 제품 및 프로모션을 맞춤형으로 추천해주거나 피싱, 스미싱 등 보안 위험이 높은 웹사이트를 탐지해 경보를 전달하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사용자에게 데이터 수집 동의를 얻고 외부 서버가 아닌 디바이스 내부에서 AI를 작동시키게 했다. 이로써 개인정보보호법(GDPR)에 따라 제3자 데이터를 활용하기 어려워진 광고 및 마케팅 환경에서 맞춤형 서비스를 좀 더 안전하게 제안할 수 있다. 따라서 보안에 민감한 카드사, 은행 등과 주로 협업한다. 앱 푸시를 통해 각 카드의 혜택을 알려주는 서비스가 주력 사업이다. 카드사에서 주로 활용하는 배너 광고의 경우 앱에 노출하기까지 약 한 달이 소요되는 데 반해 카드사에서 변동되는 혜택에 맞춰 즉각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페어리의 차별점이다.
페어리는 필리핀의 최고 통신사인 글로브텔레콤(Globe Telecom)과도 협업한 경험이 있었는데 한국 통신사에서도 그들의 기술에 대한 니즈가 있을지 확인하고자 쉬프트에 지원했다.
마침 LG유플러스 내 현업 부서에서도 온디바이스에서의 피싱 방지 서비스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SKT 해킹 사태 이후로 보안을 강화하는 것이 모든 통신사의 우선 과제가 됐다. 무엇보다 온디바이스 환경에서 안티 피싱 서비스를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페어리가 유일했다. 이에 모바일서비스FE개발팀과 PoC를 추진하게 됐다.
현업 부서가 페어리에 건 기대는 컸다. 다행히 협업 초기, PoC는 성공적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모바일 기기의 배터리 소모도 적었고 사용자경험(UX)도 상용화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피싱 탐지율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현업 부서에서 DB에 기록된 수백 개의 사이트를 직접 들어가 보며 탐지율을 평가했는데 기준보다 미달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에 현업 부서에서는 피싱 탐지율이 아쉽다는 피드백을 전했다.
류고은 블루포인트 수석심사역은 “각자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한 채 단순히 결과만 전달되면 서로에 대해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며 “이러한 결과가 나온 히스토리를 파악하고 개선 가능성을 가리는 게 중간자로서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PoC에 대한 결과로 ‘피싱 탐지율’이라는 KPI만 숫자로 전달되면 기술이 문제인지 혹은 다른 요인이 문제인지 파악할 수 없다. 기술이 문제라면 단기간에 개선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다른 것이 문제라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함께 얼굴을 맞대고 협업하는 입장에서는 우려를 담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직접 전달하기 어려울 수 있다. 혹시 상대 측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블루포인트가 페어리에 현업 부서의 피드백을 전달하고 상황을 파악해 보니 문제는 기술이 아니었다. 오히려 창업 이후 3년 동안 기술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하나 뜯어 보니 피싱 사이트를 리스트업한 DB(데이터베이스)에 결함이 있었다. 페어리가 자체적으로 피싱 사이트를 모두 수집하기가 어렵다 보니 해당 DB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벤더로부터 제공받아 온디바이스 AI로 피싱 위험을 탐지하고 있었다. ‘국내 굴지의 IT 기업과 거래하는 벤더’라는 정보를 입수해 믿고 이 업체로부터 DB를 공급받았는데, 이 DB의 품질이 LG유플러스가 설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이를 뒷받침할 자원이 없다면 대규모 서비스에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페어리는 이후 신뢰할 수 있는 피싱 DB 확보에 나섰다. 불과 1주일 만에 전 세계를 뒤져 피싱 DB를 취급하는 업체 60여 개를 물색했고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LG유플러스, 페어리의 자체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들로부터 DB를 추가로 구매했다.
류고은 수석심사역은 “PoC 과정 중 난관에 부딪히면 좌절하고 사업을 중단하는 스타트업도 많은데 페어리는 피드백을 수용하고 즉각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현업 부서가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추가로 구축한 DB를 토대로 새로운 PoC를 진행했고 실제 적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페어리는 LG유플러스 내 퍼스널Agent기술팀과는 익시오 앱에서의 사용자 활동을 기반으로 LG유플러스의 멤버십 혜택을 제안하는 PoC를 진행했다. 예컨대 사용자가 특정 영화를 검색한 기록이 파악되면 LG유플러스와 연계된 영화 할인 쿠폰을 노출시켜주는 것이다. 혜택과 관련이 있는 앱, 웹 사이트를 높은 수준으로 인식하는 데 성공했다.
DBR mini box III : PoC 성공사례
조율로 완성된 3박자 협업, 사업 성공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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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퀴즈비츠
스퀴즈비츠는 포항공대에서 AI 모델 경량화, 최적화를 연구하던 김형준 대표 등 대학원생들이 모여 2022년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AI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는 상황에서 AI 모델은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 보면 AI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 불필요한 정보도 있다. 이러한 영역을 덜어내면 연산량을 줄이면서도 성능을 유지하는 효율적 AI가 구현된다. AI를 작동하는 비용은 줄어들고 속도는 빨라진다. 스퀴즈비츠는 이러한 AI 모델 경량화, 최적화를 위한 알고리즘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예컨대 양자화 기술을 활용해 32비트 데이터를 4비트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과도 협업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스퀴즈비츠의 기술을 어떻게 더 많은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쉬프트에 지원했다. 명확한 니즈가 있는 조직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일하는 방식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스퀴즈비츠는 LG유플러스 내 Agent엔지니어링2팀과 익시오에 적용되는 온디바이스 AI 모델을 경량화하는 PoC를 진행했다. 보통 AI를 구동하는 GPU(Graphic Processing Unit, 그래픽처리장치), CPU(Central Processing Unit, 중앙처리장치)가 아닌 NPU(Neural Network Processing Unit, 신경망처리장치)를 활용하는 게 핵심이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NPU를 통해 LLM을 구동한 사례는 없었다. NPU는 신경망 연산에 최적화된 AI 전용 칩이지만 CPU, GPU보다 훨씬 낮은 전력과 폼팩터를 활용해 최대 효율을 발휘하는 구조로 음성 인식, 이미지 분류 등 소규모 추론에 활용된다. 연산량이 기하급수적인 LLM은 NPU에서 처리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무겁다.
스퀴즈비츠는 NPU로 이미지 생성 작업을 수행한 경험이 있었고 LLM에 관한 노하우는 풍성하게 갖추고 있었기에 해볼 법한 사업이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실제로 NPU에서 LLM은 빠르고 안정적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발열이 너무 심하다는 점이었다.소프트웨어를 주로 다루는 스퀴즈비츠에선 발열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시스템이 없었다. 이에 스퀴즈비츠에서 개발한 모델을 현업 부서가 직접 가동하면서 발열을 측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발열뿐 아니라 LG유플러스와 메모리 사용량, 서비스 시나리오에 맞는 정량·정성 평가 검토를 함께 진행하며 개선을 이뤄냈다. 엄격한 QA(Quality Assurance, 품질 보증) 테스트를 거친 결과 PoC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상용화를 위한 후속 과제를 논의하는 단계까지 갈 수 있었다.
에임인텔리전스
에임인텔리전스는 AI 모델이 가질 수 있는 편향이나 위험 요소를 사전에 테스트하는 ‘레드티밍(Red-teaming)’을 통해 LLM의 신뢰성을 검증하고 문제 발생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드레일)도 설계한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 석사 과정 중 AI 윤리를 연구하던 유상윤 대표가 2024년 초에 창업한 신생 스타트업으로 ICML, ACL 등 세계 톱티어 인공지능 학회에 실리는 등 뛰어난 연구 실적을 보유했다.
이 회사는 AI 에이전트가 LLM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실제 LLM과의 상호작용을 모니터링하면서 이를 테스트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AI에 선정적이거나 비관적인 대화를 시도할 경우 AI가 대화를 더 깊이 이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식이다. 또 LLM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헛소리(hallucination)’를 줄이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특히 개발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메신저이자 커뮤니티인 디스코드(Discord)에서 레드티밍 시나리오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운영 중이며 이로써 2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모아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레드티밍의 경쟁력은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공격 시나리오를 얼마나 빠르게 수집하느냐에 있는데 커뮤니티가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에임인텔리전스는 LG유플러스가 AI 에이전트 ‘익시오’를 출시하자 자사의 기술이 익시오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유 대표는 LG가 그룹 차원에서 AI연구원을 운영하고 ‘책임 있는 AI 기술 활용’을 위한 국제표준 인증을 취득하는 등 윤리적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점을 보며 자신이 연구해온 방향성과 잘 맞는다고 느꼈다. 더불어 법인 설립 5개월 차였던 만큼 대기업과 협업하며 일하는 방식을 배우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겼다.
에임인텔리전스는 LG유플러스의 AX 기술거버넌스팀과 함께 AI 에이전트 ‘익시오’의 위험 요소를 분석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PoC를 공동으로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목표로 한 위험 탐지율과 방어율을 달성하며 AI 거버넌스 정책 수립에도 기여했다. 현업 부서에서는 시나리오와 AI가 평가한 위험도를 하나하나 검토하고 구체적인 피드백과 사업적인 조언까지 제공했다. 예컨대 대기업 입장에서는 에임인텔리전스의 다양한 서비스를 동시에 활용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으니 각각의 서비스에 요금을 부과하는 현재 방식 외에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엔터프라이즈형 요금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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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연계로 완성한 오픈이노베이션이처럼 PoC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3월 ‘쉬프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망 AI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한 전용 펀드 ‘쉬프트 블루포인트 에이엑스 벤처투자조합’이 결성됐다. LG유플러스가 약 50억 원을 출자하고 블루포인트가 운용을 맡았다. 박은애 블루포인트 수석심사역은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이 아닌 형태로 기업의 PoC와 직접 연계된 벤처투자조합을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해당 펀드를 통해 에임인텔리전스를 비롯해 페어리, 테크노매트릭스, 르몽 등 쉬프트에 참여한 4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결정됐다.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애써 스타트업을 발굴해놓고 정작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오픈이노베이션 이후의 대기업 투자는 통상 재무적 투자(Financial Investor, FI)가 아니라 전략적 투자(Strategic Investment, SI)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SI는 상대적으로 투자 검토 조건이 까다롭고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다. 무엇보다 전략적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실제 활용 계획이 부실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확장성 있는 사업으로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의 SI를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하지만 LG유플러스는 전용 펀드를 만들어 이 문제를 해소한다. LG유플러스가 출자하고 블루포인트가 운용하는 펀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트업에 집중해 투자할 수 있는 펀드가 생기면서 스타트업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유인을 만들었다. 전용 펀드 조성은 LG유플러스의 실무적인 어려움도 해소하는 열쇠가 됐다. 투자 전문회사가 포트폴리오사를 관리하기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이 올라가고 투자 성과 관리도 한결 쉬워졌다. 블루포인트 입장에선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 운영부터 투자까지 집행함으로써 대기업과 함께하는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하나의 투자 서비스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B2B 투자 위탁(Investment as a Service)이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완성한 것이다.
LG유플러스는 쉬프트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에는 쉬프트 2기 참여 스타트업도 모집할 계획이다. 지난 쉬프트 1기를 통해 스타트업들이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과도 협업하고 싶어 한다는 니즈를 파악했다. 이에 2기 쉬프트는 세일즈포스, AWS코리아, 제트벤처캐피탈(ZVC) 등과 협업해 교육, 투자 기회를 모색하는 방향에 맞춘 글로벌 프로그램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12일에 열린 쉬프트 데모데이 행사에서 홍범식 LG유플러스 사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선발된 스타트업 대표들과 촬영한 기념사진. 이날 행사에서는 쉬프트 프로그램에 최종적으로 참여할 스타트업 8개 팀이 공개됐다. 또한 기업, 투자사, 스타트업 등 다양한 업계 인사를 초청해 투자 유치를 위한 기업 설명회를 가졌다.
DBR mini box IV: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오픈이노베이션 목표-니즈 명확히 제시… 두 조직 간 ‘언어 장벽’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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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형 충남대 경영학부 조교수 sh.kang@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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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스타트업 발굴 공개 모집에 참여한 대기업은 2018년 18곳에서 2023년 361곳으로 5년 사이 약 20배 증가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오픈이노베이션 특화 사업 외에도 각 지역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역시 혁신 중개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 배경으로는 먼저 기술 변화의 속도가 작용했다. 발전 속도가 빠르다 보니 모든 것을 내부 연구개발(R&D)만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정부의 꾸준한 지원으로 성장해온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미 중요한 혁신의 원천으로 자리 잡았다.
대기업 입장에서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것이 투입 자원 대비 성과가 제한적이라는 일부 비판도 있다. 먼저 많은 기업이 토로하는 어려움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언어’가 다르다는 점이다. 즉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 가치, 논리 등에 상당한 간극이 있음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둘 간의 기업 규모나 보유 자원 수준 차이 때문보다는 제도적 환경(institutional environment)의 차이로 해석해야 한다.
조직학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인 제도이론(institutional theory)은 이해관계자들의 규범과 가치로 구성된 제도적 환경이 바람직한 조직 구조와 운영방식을 제시하고, 조직은 정당성(legitimacy)을 확보하고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이를 수용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제도적 환경에 노출된 두 조직은 규범, 전략, 관심 등에 차이가 발생하므로 협업이 쉽지 않다. 특히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성장보다 전략적 목표 달성을 우선하므로 협업 과정에서 마찰이 생긴다.
이런 맥락에서 LG유플러스의 ‘쉬프트’ 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두 조직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화합과 융화를 이뤄낸 혁신적인 사례다. 이 사례의 성공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오픈이노베이션 목표와 니즈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분명하게 제시했다. LG유플러스는 쉬프트 개시에 앞서 전사적 AX 전략 방향을 수립하고, 외부 스타트업의 도움이 필요한 분야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분명히 했다. 이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서로의 기대와 이해를 일치시키고 관계의 불확실성을 줄인다. 또한 쉬프트는 산업 분야를 단순 나열한 통상적인 오픈이노베이션 공모와 달리 AI 전환이라는 특화 영역에 집중했다. 이 점이 내부 자원의 분산을 막고 탐색의 효율성을 높여 우수한 스타트업을 더 많이 끌어들일 수 있었다.
둘째, 경영진과 현업 담당자의 적극적 참여와 지지다. 최고경영진이 스타트업 선발에 직접 참여하고 현업 담당자에게 평가권을 부여해 ‘내가 뽑은 팀’이라는 심리적 주인의식을 키웠다. 이런 노력이 스타트업과의 협업에 더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셋째, 구조적으로 스타트업 협업 상대방이 사업부가 아닌 CTO 부문이라는 점이다. 사업부는 당장의 손익이 중요한 조직으로 완성도가 낮고 불확실성이 큰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꺼릴 수밖에 없다. 반면 CTO 부문은 중장기 기술 확보가 주된 업무로 사업부보다 긴 호흡으로 스타트업과의 협업에 접근할 수 있다. 쉬프트는 스타트업이 CTO 부문과 협업 과제를 수행하며 기술 완성도를 높인 다음 CSO 부문을 통해 사업부와 최종 협업하는 단계별 구조로 접근했기에 현업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넷째, 오픈이노베이션 파트너인 액셀러레이터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블루포인트는 그간의 오픈이노베이션 경험을 토대로 스타트업과 대기업 모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 기획과 협업 구조 설계에 앞장섰다. 블루포인트는 PoC 과정에서도 스타트업과 수시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이슈를 해결하고 LG유플러스와 조율하는 ‘스타트업 통역사’ 역할까지 수행했다. 그 결과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효과적인 PoC가 가능했다. 뛰어난 통역사가 글자 너머의 문화나 뉘앙스까지 전달하듯 서로 다른 제도적 환경의 두 조직이 협업할 때도 서로를 이해시키는 중재자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쉬프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최고경영진의 인식 전환이다. 일반적인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은 스타트업을 ‘협력업체’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LG유플러스는 스타트업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AI 기술을 확산하는 ‘파트너’ 관계로 접근한다. 한발 더 나아가서 “스타트업은 고객이다”라고까지 강조한다. 이는 LG유플러스가 스타트업 생태계의 제도적 논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함께 성장하겠다는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올 3월 LG유플러스는 쉬프트 참여 스타트업에 대한 후속 투자까지 가능하도록 블루포인트에 50억 원을 출자했다. 스타트업 생태계와 더 많은 접점을 만들며 오픈이노베이션을 활성화하겠다는 의미다. 쉬프트를 통해 LG유플러스와 스타트업 모두 가속 성장(accelerating) 기어로 변속(shift)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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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경영대학에서 경영공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전자 본사 전략기획팀에서 신사업기획, M&A, J/V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LG전자 스마트폰사업부에서도 근무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개방형 혁신, 기업벤처캐피털(CVC), 스타트업 M&A이며 관련 학술 논문 및 ‘한국의 CVC들: 현황과 투자 활성화 방안’ ‘스타트업 M&A 현황과 활성화 방안’ 등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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